성공회 소식/자료실 2012.08.03 11:10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 신자로 살기 - Generous Love 번역문


『너그러운 사랑: 복음의 진리와 대화의 소명』

 

기획연재 :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1

시작을 준비하는 글

 

우리 사회에는 오래 전부터 여러 종교가 혼재했으며, 지금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부 근본주의 종교인들로 인해 종교갈등이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으며, 우리 교회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세상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현실은 교회의 위기를 부추깁니다.
 

이에 그리스도인, 특히 성공회신자로서 다종교사회를 살아가는 신앙적 자세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고민을 공유하는 매개체는 ‘세계성공회 종교간관계 협의회’(NIFCON; Network for Inter Faith Concerns)가 2008년에 발행한 『너그러운 사랑: 복음의 진리와 대화의 소명』(Generous Love: the truth of Gospel and the call to dialogue)입니다. ‘종교간 관계를 위한 성공회 신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성공회 성직자와 학자들이 4년 동안의 연구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이 보고서의 문제의식은 “우리는 너그러운 하느님을 전한다면서, 왜 정작 이웃종교인들에게는 너그럽지 못할까?”입니다. 왜 그럴까요? 또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을까요?

 

“복음의 진리와 대화의 소명”이라는 표현이 이미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로완 윌리암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복음의 진리에 헌신하면서도 이웃종교인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소명을 주님의 명령으로 알고 따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의 진리와 대화의 소명이 성공회 신자가 가져야 할 “이중의 확신”입니다. 이웃종교인들을 모욕하고 비난하는 것이 복음의 진리에 충실한 것이 아니며, 이웃종교인들과 토론하고 기도하는 것이 복음의 진리를 해치는 것도 아닙니다. 대화는 소명입니다.

 

본 보고서는 먼저 이웃종교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결정짓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질을 살피고, 다종교 상황에서 성공회의 유산과 성공회 신앙의 세 원천인 성서·이성·전통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다시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기운, 하느님의 환대’라는 제목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질을 되새기며, 세상으로 파송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를 말합니다.
 

본 기획연재는 10회에 걸쳐서 보고서의 순서에 따라 그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습니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서문에서 이 보고서를 종교간대화에 대한 연구토론자료로서 기쁘게 추천했고, 이를 통해 ‘이웃종교의 전통을 이해하는 방법을 발견하기를 희망하고 기도한다’고 밝혔습니다.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기를, 그래서 우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하는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독자들의 관심과 의견을 기다립니다.

 

기획연재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2

1장 “먼저 하느님에 대해서 말해보자”

 

이웃종교인과 만나는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짐을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느님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가 지난 주일에 묵상한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종교인들을 만날 때마다 만물의 주님이신 한 분 하느님 안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아테네인들에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갑니다.’”(사도 17:27~28) 인간은 하느님의 무한한 위대성을 측량할 수도 없으며, 하느님 존재의 신비를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만약 어떤 종교가 하느님을 완전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 종교는 인간을 속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죽음, 부활을 통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으로 당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삼위일체의 핵심은 넘치는 생명과 완전한 사랑이며, 이것은 갱신과 회복의 선교를 위해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여기에 참여하라고 부름받았습니다. 또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모시는 교회의 구성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종교인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의 표지로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웃종교인들을 향해 하느님의 선교를 행하는 자로서 그들과 함께 결합합니다.

 

성부 : 우리는 하느님의 너그러운 사랑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은총을 너그러이 베푸시며 다양한 세상을 기뻐하십니다. “야훼여, 손수 만드신 것이 참으로 많사오나 어느 것 하나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고 땅은 온통 당신 것으로 풍요합니다.”(시편 104:24) 하느님은 인간을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하시고, 모두가 하느님과 함께 생명의 충만함을 즐기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1디모 2:4). 하느님은 부모의 사랑으로 모든 인간을 돌보십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에 동참하도록 부름받은 우리는 동일한 사랑과 존중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어야만 합니다(마태 5:48).

 

성자 : 우리는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십니다(히브 1:3). 예수는 하느님께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자유의 진리를 가르치며, 우리와 부활의 삶을 나누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이웃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증언은 그리스도를 닮은 봉사와 겸손으로 인정받는다면, 우리의 증언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성령 :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 성령의 사역을 경축합니다.

성령의 기운은 한계가 없으므로, 하느님의 사역도 제한할 수 없습니다.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 수 있으며(마태 12:33),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우리가 이웃종교인들을 성령의 열매를 안고 만난다면, 우리는 그들의 생활과 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사역과 결합하는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기획연재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3

2장 “다종교 상황과 성공회의 유산”

 

전 세계에 두루 펴져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다른 상황 속에서 저마다의 제자의 길로 부름받고 있지만,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상황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적 다양성과 복잡성입니다. 세계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종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문제가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는 자신들의 정체성의 중요한 차원을 표현할 때 종교적 언어를 사용한다. 반면에 공격적이고 관용이 결여된 신앙 행태가 전 세계의 종교전통 속에서 자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변화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상황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인류의 종교적 다양성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깊은 목적이 무엇인지를 식별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합니다.
 

우리는 이웃종교인들을 만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우리 성공회신자들은 복잡하고 경쟁적인 종교다양성의 세계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여는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그리스도교의 다양성에 응답한 우리 교회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종교적 다양성에 응답하기 위해 삼위일체적 접근의 윤곽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지난호 기사 참조).

 

성부 : 한 분 창조주 하느님이 계십니다. 성공회는 어떤 것도 하느님의 관심 밖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성공회는 세계는 여러 겹의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하느님 안에 있는 하나의 원천과 목적 안에서 궁극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세계에 참여합니다. 이것은 분파주의에 대항하고 다양성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자산입니다.

 

성자 : 하느님은 성자의 특수한 인간생활을 통해 드러나셨습니다. 성공회는 우리의 관심을 역사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공회는 특수한 맥락에 참여하기 위해 결정을 내립니다. 성공회는 무시간적이고 비역사적인 일반화된 주장들을 다루기보다는,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보편신앙의 함의를 분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웃종교의 문제에 관해서도 그렇습니다.

 

성령 : 성령의 활동은 내면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사회를 풍요롭게 하기 위한 조건을 제공합니다. 성공회정신은 자유를 향한 노력과 질서를 향한 노력 모두가 인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회적 상황이 형성되기를 추구합니다. 성공회는 내면의 의식이나 외부의 권위 어느 한 쪽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서 완전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면서 공동선을 이룰 수 있도록 전체 공동체를 위해 봉사합니다.

 

기획연재-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4

3장 “다종교 상황과 성공회 전통 1 : 성서 - 이웃종교의 경전과 함께 성서를 읽기”

 

성서는 성공회 신학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현재를 위한 성서의 내용을 찾아갈 때, 성공회 신학의 길은 ‘체험’의 빛에 비추어 ‘전통’과 ‘이성’의 통찰을 통해 ‘성서’를 해석한다. 다종교상황에 존재하는 지금 우리는 새로운 방법으로 성서를 읽도록 인도받고 있다. 신구약시대의 하느님의 백성은 종교다양성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도전과 기회를 이미 알고 있었고 또 이와 씨름했었으며, 그러한 체험들이 성서를 형성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신들을 섬기는 고대근동국가들 안에서 한 분 주님이신 그들의 하느님을 예배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은 많은 철학들과 로마제국숭배의 상황 속에서 예수의 이름을 고백했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에 하느님의 백성들이 직면했던 상황들과 유사한 질문을 제기하는 현안들 속에서 성서를 읽고 있다. 세계성공회공동체의 많은 교회들 안에서 성서는 종교간 만남의 현상황을 향해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유다교 :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 모두는 하느님께서 나자렛의 유다인 예수의 인격과 사역 안에서 자신을 결정적이고 최종적으로 계시하셨다는 것을 믿었고, 그 확신으로 인해서 그들은 유다법과 유다교와 유다인의 신학적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집중했다. ‘그리스도교와 유다주의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근본적이다.’ 우리는 ‘유다주의는 그리스도교에 의해 폐기된 살아있는 화석에 불과하다고 보는 어떤 관점도 배격해야만 한다.’(1988년 람베스회의 추천문서 『유다인, 그리스도인, 이슬람인: 대화의 방법』 중에서)

 

이슬람교 : 우리의 경전들, 즉 그리스도인의 성서, 유다인의 히브리성서, 이슬람인의 꾸란을 교차해서 읽으면(“Scriptural Reasoning”), 우리의 경전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성서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똑같이 꾸란을 통해 한 분 하느님이 자신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믿는 이슬람인들과 함께 성서를 읽는 것은 매우 겸손하면서도 창조적인 체험이 될 수 있다.

 

힌두교 :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출애 20:16; 신명 5:20)는 하느님의 분명한 명령을 경청하면서, 힌두교 경전의 영적 깊이를 인식한다면, 우리는 힌두교를 단지 다신론적 우상숭배라고 무시하는 왜곡된 관점을 곰곰이 되짚어볼 수 있다.

 

불교 : 성공회 영성이 성서를 읽는 방법으로 추천하는 “읽고, 주목하고, 배우고, 내면에 새기는 일”(공동기도서 대림2주일 본기도)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불교 전통이 경전을 내면의 실재로 삼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가르치는 ‘길고 강한 집중’에 의해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다른 종교의 경전들과 구전본문들을 옆에 두고 새로운 상황들 속에서 성서를 읽는 것은 우리가 다른 종교의 신앙인들과 관계를 맺도록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연재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5

4장 “다종교 상황과 성공회 전통 2 : 전통과 이성 – 다종교의 전통을 존중하고 경전을 연구하는 이성”

 

성공회 신자는 전통과 이성의 빛으로 성서를 해석합니다. 것은 교회와 사회라는 이중의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생생한 체험들이 전통과 이성을 형성합니다.

 

전통 : 종교간 관계에 대한 성공회의 독특한 신학적 성찰의 전통은 폭넓은 교회일치적 상황 속에서 자라나고 발전했으며 , 1910년 에딘버러 국제선교대회 이후로 다른 교단의 통찰들도 중요하게 참고하고 있습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표된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인 「우리 시대」(Nostra Aetate)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작업들이 이후에 열린 람베스회의의 가르침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우선 1988년 람베스회의는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속한 교회들이 「유다인, 그리스도인, 이슬람인: 대화의 방법」을 연구하도록 권고했습니다. 1998년 람베스회의는 특히 이슬람교와의 관계에 주목했고, 세계성공회 종교간대화협의회(NIFCON)가 이슬람인-그리스도인의 대화를 점검하고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성 : 성공회는 처음에 유다교의 히브리성서를 연구하고 번역하면서 유다교 랍비의 학식에 도달했고, 후에는 다른 종교들의 경전들도 알게 되면서 종교문헌연구에서 계속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성공회는 점증하는 종교다원성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응답하기 위해 철학적, 사회적, 심리적 통찰을 참고하는 방식으로 이성을 사용합니다. 세계성공회공동체의 모든 교회구성원들은 선교신학과 종교간 대화의 발전을 위해 지역그리스도인 사이에서 기여해 왔습니다.

 

전통과 이성은 성공회정신 안에서 매우 폭넓은 범위의 여러 상황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 제자도의 생생한 체험을 통해 전개되었습니다. 이 다양성은 종교간 대화라는 현안에 대한 성공회의 신학적 접근이 현저한 다양성을 띄도록 기여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성공회의 체험은 기도와 예배에 대한 부단한 관계, 전체 사회의 복지를 위한 관심, 사목적 실천에 의해 형성됩니다. 여기서 생기는 독특한 한 가지 강조점은 바로 우리 체험의 중심에 이웃종교인들과 나누는 그리스도를 닮은 깊고 강한 우정이 자리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다양한 상황 속에 있는 성공회인들은 종교간 대화가 제자도를 시험하는 핵심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종교간 대화는 기회이며 동시에 도전입니다. 이미 세계성공회 종교간대화협의회(NIFCON)는 여러 지역의 종교간 대화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핵심협의회를 소집하기도 하고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2003년 인도 벵갈로르에서 열린 ‘선교와 대화’ 남아시아협의회는 종교적 핍박을 받는 소수공동체를 변호하면서 신뢰와 존중의 종교간 대화에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공회가 이웃종교공동체와 연대하는 것을 제자도의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성공회의 선교는 쇄신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1. 우리가 이웃종교공동체와 함께 존재할 때, 우리는 각각의 장소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표지로서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2. 우리의 기운을 사회의 변혁을 위해 애쓰는 단체와 공유할 때, 우리는 각각의 상황으로 성령의 능력을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이웃을 환대할 때,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축복을 주고 받고 있는 것입니다.


기획연재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6

5장 “그리스도의 몸의 현존을 경축하기 - 그리스도인이 존재하는 곳에 그리스도가 현존한다.”

 

성공회 교회들은 세계 도처에 있는 지역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기도와 증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유지하고, 거룩한 장소와 거룩한 시간과 축성된 삶을 지속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세계 안에 있는 그분의 영원한 생명의 표지가 됩니다.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은 그 생명에 참여하도록 다른 이들을 초대합니다. 어떤 곳에는 초대를 거절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이웃종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존재를 환영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성당, 전례, 사제 등과 같은 외적 표지들을 존중하며,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제공되는 우리의 사목적 관심을 감사하게 상객합니다.

 

거절과 수용 모두는 다른 이들과 나누도록 우리에게 위임된 보물들을 새롭게 느낄 수 있도록 우리를 일깨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당연한 선물로 여기며,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신앙이 생명을 주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모든 이들이 신앙에 접근가능하다는 것을 깨다는 갱신의 체험을 한다.
 

종교간 대화의 표지가 항상 상호존중인 것은 아닙니다. 시간과 공간의 성화는 우리 자신의 계획이기도 하며 이웃종교의 계획이기도 하다. 어떤 공공장소와 지역공동체는 경쟁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사회의 평화와 복지를 위해 사역하고 기도하는 일에 헌신해야만 합니다. 다른 이들과의 만남은 우리와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개방과 감사의 자세를 보이도록 우리를 도전합니다. 이웃에게 개방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인권의 중심인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분투해야 합니다.

 

교회의 자유가 억압받고 그리스도인이 박해받는 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여전히 모두를 향해 사랑과 기도를 봉헌해야 하는 어려운 소명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고통받는 교회의 지속적인 생명력은 십자가의 발 아래에 존재하는 공동체의 연약함을 통해 그 강함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종교간 대화에서 우리가 상호존중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은 보복을 초월하는 관대함을 가르치신 주님의 말씀을 본 뜬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

 

각각의 장소에서 굳건히 존재하는 것, 기도와 증언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생활을 성화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위임된 보물들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고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그리스도교 이야기의 핵심에 놓여 있는 화육(성육신)의 논리에 대한 응답입니다. 우리의 존재는 그리스도의 몸의 현존이며, 육신을 입고 내려오셔서 삶을 사시다가 죽음을 경험하시고 새생명으로 부활하심으로 우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예수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용서와 치유와 새생명을 주시며, 이 축복을 상냥하고 너그러운 제자도를 통해서 우리의 이웃들에게 베푸는 공동체로 우리를 묶어두신다.

 

특별히 우리는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심으로, 부유하시지만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분을 예배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단지 사역과 교회의 성사 안에만 현존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배고프고 억눌린 자들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종교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가 그들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봉사요 변호요 격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인간과 함께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또 인성으로 보면 서로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분리했던 경계를 가로지르는 분으로 우리 안에 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기획연재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7

6장 “성령의 기운을 소통하기 - 성령의 선교는 성령의 기운을 주고 받는 것”

 

우리 교회가 부름받은 종교의 다양성과 갈등의 상황 안에서 우리가 계속 존재하면서 그 상황에 참여할 때, 사회 안에 있으면서 사회를 변혁으로 인도하는 기운의 원천에 힘을 주고 그로부터 힘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한 참여를 통해서, 우리는 회복과 쇄신을 향한 성령의 선교를 공유하도록 파송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경우에 따라서 종교공동체의 구조가 우리 사회 안에 있는 변혁을 위한 활발한 기운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더 유연한 협력망과 단체화가 세계종교의 가치와 신념에서 영감과 동기를 발견할 수도 있다. 교회는 정의, 평화, 생태의 공동선을 위해 다른 이들과 동료애를 누리며 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열려 있고 어울려야만 새 생명을 체험할 수 있다. 존 웨슬리는 우리가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어도 똑같이 사랑할 수는 있으며, 의견이 똑같지는 않아도 마음을 하나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확신은 실천적 계획들을 위해 타종교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주의와 상품화가 날로 커져가는 세계 속에서 삶의 영적 가치들을 긍정하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헌신을 쇄신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우리의 기운을 새롭게 환기하면서 목적을 공유한다. 그러한 동료애가 가능한 곳에서 우리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게 마음을 활짝 열게 된다. 성령의 사역은 한계가 없고 언제나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태어나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는 성령이 바람과 같아서 불고 싶은 대로 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성령의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요한 3:8). 세계 안에서 활동하는 성령의 선교의 주권적 예측불가능성을 인식할 때, 우리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타종교인들과 연대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 수 있도록 자유를 얻는다.

 

모든 기운이 창조를 위한 것은 아니며, 모든 강력한 영이 하느님의 성령과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어둡고 억압하고 불화를 일으키고 심지어는 폭력적인 측면이 있다. ‘근본주의’가 다른 종교에 있는 다른 현상인 것만은 아니다. 모든 종교에는 ‘타자’를 배척하고 차이를 불화로 고착하고 다양성을 억압하고 약자들의 힘을 빼앗는 영이 존재한다. 자기발전, 분파적 이해관계의 고취, 안락한 생활방식의 정당화, 타자의 착취 등을 위해 종교를 악용하는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왜곡의 결과가 호전적 세속주의가 도처에서 자라나도록 부추겼다. 이러한 위험들은 성공회인들이 이웃들과 연대할 때 세심한 식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우리는 화해의 사역을 위임받았으며, 오늘날의 세계에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많은 능력을 써야하는 방법들의 하나는 서로 다른 종교인들이 적개심을 품고 있는 곳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평화를 이루고 진실을 말하며 공동체를 구축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헌신의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성, 어린이,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 배제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그들을 끌어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고 결국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 각자의 마음을 찾고 계시는 성령과 같은 분이다.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가 주님이신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의 이름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믿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도록 힘을 주시는 바로 그 성령이다. 그러므로 복음화는 실천을 위한 협력, 화해의 사역, 종교간 대화와 조화를 이룬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오늘날 하느님의 성령의 선교인 기운의 주고 받음을 공유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그리스도께 오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성령의 선교의 제일 동기이며, 성령께서 그들을 예수에 대한 신앙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 이웃들의 마음 안에서 일하실 때 우리는 기뻐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이 성령의 사역이지 우리의 사역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개종을 강제하거나 교묘히 조종하는 어떠한 시도도 거절한다.

 

기획연재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7장 - 하느님의 사명과 환대를 실천하기

 

하느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세상으로 부어주시고 삼위일체의 마음 안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계신다면우리의 선교는 바로 파송받는 것이며 또 머무르는 것입니다사명과 환대의 이 양극은 밖으로 뻗어 나가는 운동과 안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현존이며나누어질 수 없으며 상호 보완적입니다우리의 선교적 실천은 둘 다를 포함합니다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환대를 받아들이면서 사명을 다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루가 10:5) 우리는 제자들처럼 손님이 되는 법을 배워야만 하고우리의 사명을 위한 선포의 시작은 평화의 축복과 하느님 나라의 좋은 소식의 선포와 아픈 자들의 치유입니다그리스도의 대사들로서 우리의 선교는 하느님과 다른 이들을 만나고 반가워하고 하느님과 다른 이들에게 우리가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고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일하는 여러분의 종이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2고린4:5) 우리에게 위임된 사명은 화해의 사역이며환대를 주고 받는 것은 낯선 자들이 다른 이들과 친구로서 화해하게 되는 가장 강력한 표징이 됩니다.

 

성서는 주인-손님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깊이를 가리키는 이미지로 가득합니다하느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예기치 못한 방문객에게 최고의 대접을 제공할 때 환대의 자격을 충족합니다환대의 원천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실천의 통일성입니다진정한 환대는 우리의 신념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신념을 실천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그러면 다음에는 우리 자신도 다른 이들의 우정어린 환대를 받을 수 있으며그것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핵심에 놓여 있는 환영하는 너그러움에 대해 강력하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환대를 나눔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쉽게 잊곤 하는 복음서의 중심주제를 주목하게 됩니다그것은 바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친절한 만남을 통해서 다시 복음을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환대의 실천에 대한 많은 중대한 도전들이 있습니다우리의 손님들은 어쩌면 의심스럽고무섭고적대적일 수도 있습니다우리가 손님일 때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우리는 환대의 주고 받는 일에 항상 실패하곤 합니다상대방을 진심으로 수용하고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위적인 싹싹함으로 차이를 억누르기 위해서 환대를 실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난처해지고 복잡해지고 상처받는 것도 우리가 손님이며 주인으로 부름받았다는 것의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만 합니다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차이점 안에서 상대방을 환영하는 바로 그 때에 우리는 진실로 상대방에 의해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환대는 항상 시간을 들여야 하고 가끔은 값비싸기도 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신뢰구축 과정을 통해 강화됩니다신뢰가 발전하면마치 연회의 식사자리에서처럼손님과 주인의 뚜렷한 구분은 사라집니다우리가 상대방을 만나는 공간은 궁극적으로는 손님이나 주인의 어느 한 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그 공간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며공공생활의 소위 중립공간이라 불입니다우리가 만나고 반가워하는 공간상황사회 중 어느 것도 특정집단의 배타적 영역이 아닙니다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하느님은 그것들을 모두가 공유하도록 위임했습니다.
 

성공회 영성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 우리 생활의 핵심은 자신을 이방인과 순례자로 여기는 사람들을 위한 식사라는 사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우리 주님 자신이처음에는 제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빵을 떼시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루가 24:16). 감사성찬례는 우리 역시 모두를 위한 사랑의 목적의 완성을 기다리시는 성부 하느님의 손님이라는 인식에 도달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하느님은 세계 모든 나라를 위한 집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여정을 위해서 우리에게 빵으로 힘을 주시는 것처럼우리는 여기서 지상나라의 시민으로서 모든 이웃종교인들과 함께 우리의 삶을 나눕니다우리는 모든 인류가 한 분 천상의 주인이신 아버지를 함께 만나는 그 날을 기다립니다그 분은 손수 준비하신 연회의 기쁨을 나누도록 당신의 모든 자녀들을 초대하십니다.

 

기획연재 다종교사회에서 성공회신자로 살기” 

8장 - 보냄과 머뭄 – 파송과 현존

 

최고 수준의 인간관계의 특징은 인간을 새생명으로 인도하는 참된 만남을 통해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동성과 상호성입니다우리가 타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와 적대하지 않으며우리 안에 그들이 또 그들 안에 우리가 현존합니다그들의 기운은 우리와 또 우리의 기운은 그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은 우리와 함께 하느님의 집에 있는 같은 손님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다른종교의 이웃들을 새로운 방법으로동료인간이자 우리처럼 자신의 생활을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the One)을 향해 나아가고자 애쓰는 인간으로 알아차리게 됩니다우리는 그들을 향해 말하고 그들에게 주기도 하지만새로운 방법으로 하느님의 은총어린 현존을 체험하는 만남의 상호성 안에서 우리 이웃들을 경청하고 그들로부터 받기도 합니다오늘날에는 신학적 수준에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지하게 연결되기 위해 세계이웃종교의 학자와 지도자들이 새로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웃종교인들과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해야 하는 필요가 강해지고 있으며이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기반을 두어야만 합니다성부성자성령은 역동하고 영원하며 끝없는 자기를 내어주는 운동인 생명 안에서 서로 안에 머무릅니다이것은 보내시는 성부성부에 의해 보냄받은 성자영원하지만 인간을 하느님의 생명으로 끌어오기 위해서 인간의 시공간 안으로 들어오신 성령으로 표현됩니다우리가 이웃중교인들을 만날 때우리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이와 같은 보냄과 머뭄의 역동성을 반영하도록 부름받습니다그러면 우리의 만남들은 하느님의 바로 그 심장 안으로 우리를 깊이 인도하며 종교간 연대를 위한 우리의 결의를 강화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모든 이들을 위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으로 경축하면서 이웃종교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현존을 지속할 것입니다우리는 성령의 기운에 우리 자신을 개방하면서 우리의 기운을 이웃종교공동체와 이루어가는 연결소통화해를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우리는 성부의 은총어린 초대에 응답하면서 환대와 사명의 주고 받음을 통해 신뢰를 쌓아갈 것입니다우리는 이웃종교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현실이 이러한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또 안타깝게도 우리 이웃의 현실도 그러합니다신학은 항상 경험과 긴장 속에 있으며종교간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잠정성과 역설과 실망과 함께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그리스도의 부서진 몸을 통해 치유를 찾고 성령의 대담한 모험을 통해 확신을 찾는 사람들로서 실패나 거절의 위험 때문에 주저해서는 안됩니다우리의 죄많음과 연역함과 두려움과 주저함에도 불구하고이웃종교인들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표지로서 그들과 함께 머물도록 우리를 부르시며 또 하느님의 선교의 수행자로서 이웃종교인들과 연대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도전에 지속적으로 응해야만 합니다삼위일체 하느님은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 종교간 만남 속에서 생명의 새로움으로 부름받은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빚으실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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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소룡 2012.09.25 08:50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맞아요..마리아의 모델은 세미라미스 여신이 모델이죠^^

  • 경미 2013.06.11 16:49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그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말미암지않고는 아버지께로갈자가없다고하신 예수님말씀은 성경에서 지워야하는건가요??

    • 대한성공회 2013.06.12 22:22 신고 수정/삭제

      왜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거죠? 분명 글에는

      "우리는 예수를 모든 이들을 위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으로 경축하면서 이웃종교공동체 안에서 우리의 현존을 지속할 것입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

  • 하나님의 은혜 2014.08.17 18:08 신고 ADDR 수정/삭제 답글

    성공회신도들에게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