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 대한성공회 주교원의 사목적 권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는 대한성공회 주교원의 사목적 권고



대한성공회 성직자와 수도자, 교우들에게 드립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과 구원사의 거룩한 사업으로 부름받은 대한성공회의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고난과 십자가의 신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이어 받은 성공회의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은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이 세상에서 실현하도록 부름받아 보내심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자신을 구 원할 뿐만 아니라(개인성화) 동시에 타인을 구원하는(사회성화) 교회의 사업을 위한 일꾼으로 능력의 하느님께서 세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그것이 새로운 삶의 길이요 우리의 문제를 풀어주는 길이라고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대한성공회의 모든 믿음의 지체들이 하느님의 선물인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역사에 깊이 참여하길 빕니다.

한국 사회에서 향후 5년 안에 기독교교단의 광폭적인 변동이 올 것으로 선교학자들은 전망합니다. 이미 지방 도시들을 필두로 모든 교단, 교회의 신도수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보다 더 세속적이라고 하는 조금은 심한 비판도 결코 외면할 수 없습니다. 생활과 믿음이 분리되어서 신앙의 균형이 기울었고, 그런 삶이기에 교회답지 못하게 되었다는 성공회적인 분석이 우리에게는 더 적합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성공회의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만이라도, 세상의 다수가 가는 길을 그저 따라 걸을 것이 아니라, 가시밭길일지라도 주님이 가신 길을 걷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순례자의 여정을 걸어 나가기를 빕니다.

질병의 아픔을 지닌 이들, 슬픔과 좌절과 절망에 빠진 고통받는 청년, 여성, 청소년, 노인, 이주민들이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서 도움을 갈망하며, 마음 문을 열고 성공회의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그들을 도움의 손길로 영접하도록 우리 주님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4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의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2만여 명이 죽어갔고 원전폭발과 방사능 사고로 수십만명이 고향을 떠난 일이 바로 대한성공회 대전교구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토호쿠 교구에서 일어났습니다.

1년 전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7시 2분에 세월호 사고 보고가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당시 06시 54분에 이미 맹골수로에 진입했고, 06시 54분 14초에 충돌이 있었고, 07시 02분에 사고 보고가 되었습니다. 이후 우측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구멍이 나서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12시 30분에 배가 완전히 침몰합니다. 학생 250명 교사 12명과 일반인 등 293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엄청난 피해를 낸 사고의 진상은 안타깝게도 아직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동일본대지진 발생시각인 오후 2시 46분에 일본 전국에서 싸이렌을 울리고 종을 치며 묵상의 시간을 가지며 죽은 이들에 대한 기도로 예를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성공회는 전국 교회가 참여하여 적극적인 피해 복구 지원을 계속하고 있고, 4년이 지난 지금도 직접 피해지역에서 지원센터들을 운영하며 피해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동일본대재해 4주년 기념 성찬례를 올리는 토호쿠교구 주교좌성당에는 토호쿠교구장 가토 주교, 우에마츠 수좌주교와 오끼나와교구장 우에하라주교가 참석했고, 타교구 사제들과 교우들과 영국성공회 에서도 참석자가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세월호에 대하여 성공회 교회와 교우로서 어떻게
기억하고 참여하고 있는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세월호의 침몰시간이 정확하지 않아, 완전 침몰시간으로 알려진 2014년 4월 16일 12시 30분을 기 준으로 기념하도록 제안합니다. 사고로 희생된 모든 별세자들을 기억하고,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함께 슬 픔을 나누며 새 희망을 찾는 일이야말로 살아남은 이들과 죽은 이들을 이어주는 교회의 일이고 신앙인의 일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공회가 지금 가장 아픈 이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정신을 잃고 일상의 삶이 흐트러진 사람들은 누구보다 하느님과 이웃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도움을 기다리며, 배 안에 갇혀 숨막히는 상황에 놓인 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무서운 시간을 보냈던 학생들과 시민들, 사고로 그들을 잃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고는 무너져 내린 이들, 일상에서 늘 사랑을 나누던 희생자 들의 식구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망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야말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이웃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희생자, 실종자의 가족, 친지, 친구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성공회 교회와 교우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 까요?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이 꾸준히 세월호참사 피해자 가족을 지원하는 일과 추모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여러 사제들과 신도들이 진실 규명을 위한 일에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생명평화 도보순례로 팽목항을 떠나 광화문까지 걸은 데 이어, 올해는 부활절 다음날부터 1주기 기념일인 4월 16일까지 밀양에서 팽목항으로 도보순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 교구의 몇몇 교회도 추모의 기도에 참여하고 있음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웃 교단인 한국 천주교는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과 교황과의 만남을 통해 한국 사회와 교회의 중심 과제로 이 일을 드러내었습니다. 500만명이 넘는 신도를 지닌 교회이기에 큰 영향을 한국 사회에 던진 것이 분명 합니다. 비록 수적으로는 작을지라도 우리 성공회는 작은 교단이면서도 우리의 할 일을 분명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4월 12일 주일은 1주기 추모 기도를 전국교회가 드리기 바랍니다. 사고 당일 1주기인 16일 12시 30분에 싸이렌과 타종으로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교회에서는 세월호참사 1주년 추모감사성 찬례를 11시에 드리고 별세자를 위한 기도를 드리는 중에 침몰 시간인 12시 30분이 되면 타종으로 추모 하고, 기도와 성가로 마치는 예식을 가진다면 일본성공회에서 사망자를 위해 드린 예의에 견줄 수 있다 여깁니다. 이는 아주 작은 기념 예식에 불과하지만, 전국적으로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세월호로 인한 대규모의 죽음을 접하면서, 결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교회와 신앙의 일로서, 생명을 지키고 생명을 보호하자는 우리 한국사회의 생명운동 차원에서 기억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는 사회로 거듭나자는 뜻으로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를 성공회의 종소리로,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을 성공회를 통하여 한국 사회에 들려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공회에 맡겨진 선교의 과제라 여겨집니다. 작은 리플릿에 생명을 지키려는 주님을 따르는 성공회 교우의 일상의 삶과 성공회 선교 5대 지표를 살아 가는 모습을 담는다면 기독교 선교가 무너지는 이 시대에 새로운 생명의 바람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그 말씀을 바탕으로 기도하며, 타인을 위하여 함께 하는 마음을 모아 그들을 위한 예배를 올린다면, 우리 성공회가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는 이 세상에 생명의 귀함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향내로 채우게 될 것입니다. 각 교회마다 신자회장이 이끄는 기도문으로 연도를 드리고, 교회와 교우들의 각 가정에서 기도가 울려 퍼지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생명의 삶으로, 사랑의 삶으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우리 성공회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신자들의 삶이 부활과 생명과 평화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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