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의 역사


1889년 11월 1일, 조선교구 설립을 목적으로 고요한 주교(Charles John Corfe)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켄터베리 대주교로부터 주교 서품을 받는 것으로 대한성공회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는 주교서품을 받은 후에 한국 선교를 위하여 동역자들을 모집하여 영국을 출발했고, 드디어 1890년 9월 29일 인천항에 도착하여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충청도 지방에 전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국 개화기에 신교육을 보급하기 위하여 각지에 신명학교를 설립하고 인천, 여주, 진천 등지에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수원과 안중에는 보육원을 개설하였다. 

대한성공회는 선교초기부터 한국문화의 토양 깊이 뿌리를 내린 교회가 되고자 토착화에 힘썼다. 선교사들의 한국학 연구는 괄목할만한 것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토착화에 바탕을 두고 한국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성당들이 지금도 강화읍, 강화도 온수리, 진천, 청주 등에 남아 있다.

1923년경부터는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에서도 선교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1914년에는 성직자 양성을 위한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 1925년에는 수도자를 위한 성가(聖架)수녀회가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0년대부터 교회 개척에 힘을 쏟았고, 초기 선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정신지체장애교육기관인 성베드로학교, 성직자양성기관인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가 계속하여 설립되었다.

한국인이 처음으로 주교가 된 것은 해방된 지 20년이 흐른 후였다. 1965년 이천환 주교가 서품을 받고, 조선교구는 서울교구와 대전교구로 발전적 분할을 하면서 관구로 독립하였다. 다시 1974년에 대전교구는 대전교구와 부산교구로 분할되어 대한성공회는 현재의 3교구 체제가 되었다. 3개 교구는 각각 교구장 주교를 중심으로 교회발전과 사회복음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현재 대한성공회는 전국에 100여개 교회, 약 5만명의 신자가 있으며 선교교육원을 통한 선교교육과 나눔의집을 통한 사회선교, 샬롬의집을 통한 이주노동자 사역 등에 열정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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